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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던져 구국투쟁, 그 덕으로 우리들이…
(순국선열의 날 특집 / 우리 고장 애국지사)
2020년 11월 20일(금) 10:17 [완주전주신문]
 
“팔 하나 끊어 ‘남북통일 된다면 끊겠으나’, ‘네 목숨 내놓으면 통일 이룬다’고 했을 땐 글쎄요. 이럴 것 같다”는 사람을 보았다. 누구나 목숨만은 이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애국지사마다 목숨이 아까웠으면 나섰겠나?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기억 저 편으로 자꾸만 멀어져 가는 애국지사를 찾아 추모하며, 그 공덕을 선양함이 국민의 도리이다.

가까운 시대 애국지사부터 소개하되 빠진 어른은 앞으로 우리 다 함께 보완해 나가기로 한다.

↑↑ △완주군에는 고정식, 김춘배, 윤건중, 정병은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었다. 사진은 한말 의병들의 모습(사진 위). △수많은 선열들의 넋을 기릴 수 있는 기념 시설물 건립이 요구된다. 사진은 고산공원 조감도 모습(사진 아래).
ⓒ 완주전주신문



■ 고산 1,200석 부자 아들, 100년 전 고정식(高貞植)

고정식 아버지는 고갑준. 고산에서 1,200석(石) 제일가는 갑부였으나 원자가 없었고, 고정식(字 영오:榮午)은 서자였다.

고 의사는 26세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는데, 의사의 묘는 ‘고산면 서봉리 공동묘지에 있다’고 한다(고병철씨 증언).

고정식은 독립자금 모집책 김진성(29)과 손이 닿아 1920년 8월 18일 자기 집에 함께 와 본인은 대문 앞에서 망을 보고, 일행은 안방에 들어가 회중전등을 비추며 육혈포(六穴砲)로 협박해 현금 9,600원을 얻어 달아나는 데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상해임시정부로 송금하는 과정에서 종로경찰서원에게 붙들려 1920년 9월 7일 검사국에 넘어가 3년 징역형을 받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923년 스물여섯 살에 옥사했다.

↑↑ △ 고정식·김춘배 의사가 복역했던 서대문형무소.
ⓒ 완주전주신문

아버지도 훌륭해 “이번 일은 내 자식이 배후에 서있어”라고 하며 모든 책임을 ‘아들’에게 돌렸다. 부자(父子) 모두 거물이었다.

이런 사연이 △고산초등학교 100년사’, ‘독립운동사(사단법인 독립동지회 1985. p253)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회1990. p331) △<동아일보>완주인물 등에 기록됐다.

고정식 의사에 대해 국가보훈처, 지식인, 고씨 문중, 고산 주민이 시선을 주지 않은 것이 안타깝고 영령 앞에 부끄럽다.

읍내리 너른 공원에 ‘작은 빗돌 하나’만이라도 세워보자는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 고산면주민자치회가 서두르면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 봉동 부자 아들 윤건중(尹建重)

전주서문교회 신도 윤건중(尹建重:1897∼1987)은 기미년 3월 1일(23세) 서울 파고다공원 집회에 참석한 후 독립선언서를 ‘분해한 자전거 뼈대’ 속에 넣어 탁송물로 전주 김인전 목사에게 보냈고, 박태련은 김 목사 지시에 따라 태극기와 선언문을 만들어 3월 13일 전주 남문시장을 뒤집어놓았다.

윤 의사는 상해임시정부에 자금 10,000원을 보냈다. 김인전-여운형-이시형-윤건중-김갑수-조동오의 합사진이 필자에게 있다.

독일유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윤건중은 1930년 봉동에 생강산업조합을 만들었는데, 1936년 생강 생산량이 2만석을 넘었다.

1937년 8월 20일 <동아일보> 기사 “(전략) 봉상산업조합원 720여인은 봉상조합 전 이사 윤건중 동상 건립을 이구동성으로 가결 했다(이하 생략)”.

↑↑ △ 윤건중이 건립한 봉상산업조합 건물의 현재 모습.
ⓒ 완주전주신문

제1공화국 농림부장관(9대)에 임명 돼 서울 가는 날 당꼬즈봉(가랑이가 좁은 바지를 가리키는 일본말)에 등산모를 쓰고 안경다리를 실로 맨 중년신사가 서울역에 내렸다.

농림부 간부들이 마중 나왔으나 몰라 봐 만나지 못했다.

봉동 우산에서 낳아→삼례→전주남노송동→밤소→고산 소향리에서 살았던 위인을 관리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사회단체에서도, 학계에서도 점점 잊어만 간다. 묘는 대전현충원에 있다. 그 아들이 윤필립이다.


■ 신종갑(申宗甲): 일제 강점기 국내 항일 활동

‘한 맺힌 사연’. 피눈물로 쓴 딸 신정애의 수기(33면)와 1927년대 동아일보 신문 기사(3장), 전주지방법원 판결문[소화 2년, 형공(刑公) 제1100호]을 보았다.

처참한 가족사이다. 신종갑은 1901년생으로, 고산면 읍내리에서 살았고, 1926년 동아일보 고산지국 기자를 했다.

“…고산청년회 집행위원 신종갑(申宗甲 27)은 동회 8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자 비라(전단)를 등사 산포하려고 미리 ‘주재소 검열’을 받았으나 ‘불온하다’하므로 모두 처질렀다. 그랬는데도 전주경찰서에 구금, 검사국에 넘겨져 ‘출판법 위반’으로 지난 4일(1927. 11) 오니시 판사(大西判事)와 사카이(酒井:サカイ) 검사(檢事) 열석(列席)하에 금고 10개월 구형이 있었다.”

↑↑ △ 독립운동가에 대한 일본 재판장 모습.
ⓒ 완주전주신문

‘고산청년 위원, 금고 10월 구형’이라는 제목의 서기1927년 11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 전문이다.

1927년 12월 27일 재판에서 금고 7월형에 처해졌다.

이어 1928년 6월 30일자 ‘고산청년사건 신종갑씨 출감’에 “…고산청년회에서는 작년 10월 하순경에 5주년(판결문에 8주년) 기념식을 거행코자 선전 비라를 작성 발표하려했던 바 경찰 당국에서 불온하다는 이유로 위원 신종갑을 검거 취조했다함은 기보(旣報)하였거니와, 그 뒤 기소되어 ‘출판법 위반’이라 해서 ‘금고 7개월’ 형을 받아 전주형무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28일(1928. 6) 오전 6시경에 출감했다.”고 게재됐다. 그 후 1940년 복권 됐다.


■ 김춘배(金春培)- 1930년대 항일 무장투쟁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 기타 1934년 10월 호외신문 앞뒤 쪽 모두가 김춘배 이야기였다.

사이토(加藤白嶺)의 글 ‘괴도(怪盜)’와 이원규 소설 ‘암야의 총소리’를 보면 영화, 연속방송극, 연극, 가극, 춤, 만화 등 엄청난 작품이 되고도 남을 만하다.

그런데 삼례 김춘배가 함경도 사람으로 소개된 글이 있고, 이를 그대로 잘못 인용해도 그럭저럭 넘어간다.

↑↑ △ 신창주재소 무기고를 털어 일본군을 긴장시킨 삼례 출신 김춘배 의사의 기사가 실린 1934년 10월 동아일보.
ⓒ 완주전주신문

손기정 선수가 우리나라 사람이듯 김춘배는 삼례 인물이다. 19일 동안 함경남도 경찰관원 2만 명이 출동했고, 2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의사는 결국 무기징역형을 받았고, 복역 중 1942년 7월 8일 옥사했다.

신창주재소 무기고를 털은 인물이다.(2020. 8. 12 <본보> 특집 참조)


■ 정병은(鄭炳恩)-1940년대 국내 항일 활동

공훈록 포상 정보: 독립유공자 관리번호 961,532. 당시 정병은(24세)의 다른 이름으로 정의섭(鄭義燮), 정병섭이 있으며, 전북 완주군 삼례면(읍) 삼례리 1308번지가 본적·주소이다.
1911년 5월 3일생이며, 1966년 4월 18일 종세했다.

공훈록에 사립 삼례영신학교(參禮永信學校)를 졸업, 1925년 4월 전주공립농업학교(全州公立農業學校)에 입학하였으나 1928년 3월 퇴학을 당했고, 1930년 2월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 동조시위에 참여했다가 퇴학당했으며, 민족의식이 강했던 삼례영신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다.

↑↑ △ 김춘배·정병은이 다녔던 영신학교(현재 삼례중앙초)
ⓒ 완주전주신문

남다른 기질이 있어 식민지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자며, 채암석(蔡巖錫:옥구 출신 26세)·손표기(孫漂基)·정용득(鄭龍得)·전창근(田昌根)·채규오(蔡奎五)·이발순(李發順)·신옥룡(辛玉龍)과 관련서적을 읽는 ‘독서회’를 조직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농민·노동자를 모아 ‘적색조합’을 설립하고자 노력했다.

이러는 가운데 1933년 10월 소위 ‘삼례독서회사건’으로 체포됐고, 1934년 4월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는 과정에서 6개월 이상 철창생활을 했다.

2005년 국내 항일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국내항일 애국지사이다.

검거 재판 과정부터 많은 고초를 겪었다. 혹 이념에 얽힌 다른 눈으로 보기도 하나 독립유공자 공훈록 16권(2006년 발간)에 등재된 인물이다.

1920년대 삼례제일교회 정근 장로의 아들. 정근 역시 영신학교 교사였다.


■ 유유대장(柳柳大將)-한말 의병

●재판기록 없는 유중화(字 致福:1866∼1910)

전북 완주군 비봉면 출신 ‘1문(門) 9의사(義士)’ 대표. 유중화 지도대장은 재판 절차도 없이 직결(直結) 처분됐다.

서기 1907년 9월 같은 고을 유지명(柳志明)이 기병(起兵)을 하자 ‘삼남의병대’에 입대해 용담, 은진, 고산 등지에서 군자금을 마련하는 등 유격활동에 동참,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12월 24일 윤○○(尹○○)라는 자가 의병을 사칭, 닥치는 대로 탈선 강도질로 기풍을 어지럽히자 유지명 의병장의 명에 따라 그를 총살했다.

1910년 9월 금마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조사 받던 중 혀를 깨물어 취조관 얼굴에 내뱉자 즉석에서 총살 당했다.

해방 후 정부가 들어서고 오랜 세월이 지난 1980년대에 유삼석·유봉상·유윤상 등 집안 대표자가 고산향교 유림들을 움직여 사적비가 섰으며, 10년 후인 1990년 후손들이 애국장을 받아들었다.

포상정보에 우북면(紆北面) 장암 이화순(李化順) 집에서 30원, 금마 도내리 최순표 집에 들려 엽전 15전을 조달받은 군자금 이야기가 나온다.

↑↑ △ 비봉공원에 있는 일문구의사 비.
ⓒ 완주전주신문

유중화 의사 외 8인을 ‘고흥유씨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라 하며, 매년 11월 17일 비봉면 내월리 비봉공원에서 (사)일문구의사선양사업회(이사장 유희태)가 주관, 추모행사를 거행한다. 외손 이유종(이원옥) 이태종(이순옥)도 함께 했으니 ‘2문 11의사’로 기억해야 한다.


●유지명(柳志明) 한말 대일 의병대장

재판 기록:형사 제95호. 첫 장에 전라북도 고산군(지금 완주군) 운서하면(지금 화산면) 고성리, 농업, 28년, 피고 유지명(柳志明)이라 했고, 기각 사유서에 “난(亂) 일으킬 뜻을 가지고 융희 원년(1907) 9월 초 자칭 ‘창의대장’ 또는 ‘삼남의병대장’이라 칭하며, 대장 도장을 찍어 의병 모집 격문을 붙였다. 군량미를 준비하는 한편, 수백 명을 이끌고 용담군·고산군·은진군을 횡행했으며, 1907년 9월 22일 용담군 건무리(乾無里)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시작한 이래 일본 보병·기병·헌병들과 충돌, 여러 차례 싸운 바 있다. 1908년 7월 13일 헌병에 붙들었으나, 그날 교묘하게 달아난 뒤 종적을 감추었는데, 1909년 1월 23일 다시 헌병에게 잡혔다. 같은 무리 윤병오(尹炳五)는 의병을 참칭 겁탈, 강간 등 범행을 저질러 말리고 달랬으나 깨우침이 없자, 1908년 12월 24일 유치복(柳致福)을 시켜 총살케 했음으로 ‘교수형이 마땅하다”고 판결했다.

↑↑ △ 조선말 유지명 의병장이 쓰던 칼(사진 위)과 일본 헌병 모습(사진 아래).
ⓒ 완주전주신문

1909년 5월 15일 대구공소원 형사부 마쓰시다(松下直美) 외 판사 2명도 1심 판결과 마찬가지였다.

△융희 3년(1909) 형상 제123호:대심원(大審院) 형사부 재판장 외 4인 판사도 초심, 재심과 똑같은 이유라며, 1909년 6월 5일 기각하니 교수형이 확정됐다. 언도 후 29일 만인 1909년 7월 3일 삼남의병대장 유지명은 28세에 목숨을 빼앗겼다.


■ 우리 군민이 서둘러야 할 일

선양사업으로 기념관, 동상, 흉상, 비석, 공원조성 등 모두 좋으나 우선 거리 이름부터라도 시작해 봤으면 한다.

삼례에 ‘김춘배로’, 봉동에 ‘윤건중로’ 고산에 ‘고정식로’ 화산에 ‘유지명로’ 비봉에 ‘1문9의사로’ 등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 도봉구의 ‘전태일 길’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 △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전태일 길’을 알리는 이정표.
ⓒ 완주전주신문

각 읍·면마다 자치회가 이런 일에 앞장을 서면 따르는 단체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광복하라!’는 2020년 8월 15일 김원웅 광복회장의 ‘75돌 광복절 기념사’ 전문을 읽어 보기 바란다.

임진왜란·병자호란·몽고침입까지 늘여 생각하면 그 눈물이 만경강을 넘치게 할 것이다.

지방자치시대 시·군·구가 선열에 대해 인색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일을 해야 일이 되더라. 입에 밥 한 볼탱이 들어가는 것, 모두가 선열들의 은덕이다.


《참고 도서》
△『고산초등학교 개교100년사』 △『독립운동사(사단법인 독립동지회 1985. p253)』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회 1990. p331)』 △<동아일보> △<조선일보> △<완주전주신문> △『완주인물지』 △『완주군독립운동가』 △『1문 9의사』 △『괴도(일본어)』 △『암야의 총소리』 △『독립운동가 김춘배』 △『서문교회 100년사』 △『삼례제일교회당회록』 △애국지사 재판 기록 △『시사전북』 2020년 6월·8월호.


▲ 글쓴이 =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원제연 기자  
“언론사 & 단체 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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