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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조씨(平壤趙氏)-고산공손계 이야기
특집 / 조을정(趙乙鼎) 병사(兵使)와 고산(高山)
2020년 05월 29일(금) 10:07 [완주전주신문]
 

↑↑ 글쓴이=조 한 승
(사)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별좌공파 / 병사공 방18세손)
ⓒ 완주전주신문
■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며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만나 명함 주고받으며 통성명하고, 지내다 친해지면 못 잊을 사람이 된다.

같은 학교를 다니며 사귀던 친구나 동문끼리도 나이 들어 씨족 관계를 알고 나면 한층 더 가까워진다.

완주군 고산(高山)지역 이야기를 하는 중에 120년 쯤 올라가면 고산군(郡)·고산현(縣) 역사가 나온다.

이 지역은 마침 오늘날 고산 6개면(고산, 비봉, 화산, 운주, 동상, 경천)으로, 연고자끼리는 한결 더 친근감을 갖는 게 사실이다.

은연중 ‘어디 사나? 누구 아나?’도 묻게 된다. 고산현은 백제시대 이름이니 ‘고산 역사’가 오래 돼 고산읍지(高山邑誌)·고산지(高山誌)에 씨족 이야기가 나오고, 집집마다 보첩(譜牒)이 있어 서로 연관성을 따져보면 주민 거의 모두가 남남이 아니다.

여러 씨족 가운데 우선 ‘평양조씨(平壤 趙氏)’와 그 사위 집안을 알아본다. 넓지 않은 고산면 서봉리 산야는 대체로 조(趙), 구(具), 박(朴), 김(金),고(高)씨 등 5성족의 땅이 많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우리 종훈 숭선조(崇先祖), 돈종족(敦宗族), 교자손(敎子孫)의 취지에 맞춰 이 글을 쓴다.


▲ 고산 인물 조을정(趙乙鼎)

고산지(高山誌:1964)상권 19면에 성씨편이 있고, 고(高)·유(兪)·인(印)·국(鞠)·김(金)·구(具) 등 고산 윗대 6성 입향조(入鄕祖)를 설명을 하는 가운데, 두 집안에서 ‘조을정(趙乙鼎) 병사(兵使)’ 이야기가 나온다.

반갑고 희한하여 평양조씨대동보 권일(平壤趙氏大同譜 卷一:1994년)‘병사공(휘 을정)파’ 쪽을 펼쳐보니 ‘이게 웬 일인가!’ 아들 하나(普:보)에 네 딸이 나온다.

고산 6개면 지역에서 번창한 능성구씨(綾城具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고령김씨(高靈金氏), 제주고씨(濟州高氏) 등 네 집안은 평양조씨 할머니 자손으로 구신동, 박지, 김수인, 고인충 등 4인은 조을정(趙乙鼎) 병사의 사위이다.

그러므로 구, 박, 김, 고 등 4성 처가(妻家) 외가(外家)가 바로 평양조씨이다.


▲ 평양조씨 가문의 쟁쟁한 사위들

1. 능성구씨 구신동(具信童)
구신동은 경성판관(鏡城判官), 옥구현령(沃溝縣令)을 지냈다. 아버지는 순(順)으로,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역임했다.

그러니 조을정 병사와 잘 아는 사이로 사돈이 되었다. 구신동은 조씨 집안에 장가들어 고산에 들어온 구씨 입향조(入鄕祖: 고산지)’이다.

구신동과 아들 수(壽), 손자 세영(世英) 묘 모두가 고산면 서봉리 소농골에 있다. 고산지역에서 인물, 재산, 자손이 많은 능성구씨의 외가가 바로 평양조씨이다.

↑↑ ▲ 능구성씨 구영 사당 정문
ⓒ 완주전주신문

↑↑ ▲ 능구성씨 보갑(족보 보관)
ⓒ 완주전주신문


2. 밀양박씨 박지(朴誌)
박지는 운봉현감을 지냈고, 부인이 조을정 딸이며, 양인 사이의 희정(希貞),세정(世貞) 등 두 아들이 있다. 둘째 세정은 아우 열(說:1464∼1516)에 양자 들었다.

지 본인과 아들 희정, 세정의 묘가 고산면 서봉리 신덕마을 앞산 장록(長麓)에 있다. 이로 보아 조씨 집안에 장가들며, 처가 따라 고산에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비봉면 수선리 평지마을 밀양박씨는 외가 자랑 빼놓을 수 없는 집안이다.


3. 고령김씨 김수인(金守仁)
김수인 아버지는 김영구(金盈九:1437년생). 충청도 비인(庇仁)현감을 했으며, 그 아들 수인이 조을정의 사위이다.

이 연고로 고산현 율곡리에 살았다. 고산면 신덕마을 주변 산이 고령김씨 종산이고, 신덕마을에 입향조 김영구 이하 여러 대를 받드는 신덕재(新德齋)가 있다.

재실 기문은 화산면 종리 신암(愼菴) 김정만(金正萬) 선생의 글이다.

↑↑ ▲ 고령김씨 번성 유적
ⓒ 완주전주신문


4. 제주고씨 고인충(高仁忠)
고인충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고산지 상권 19면 성씨편 맨 처음 입향조가 바로 고인충인데, 그 기사는 이렇다.

“고인충은 제주인으로 호는 기은, 고려 공민왕조에서 문과에 합격 벼슬이 사직(司直)에 이르렀고, ‘은자광록대부’가 더해졌으며, 문장과 명필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나 고려가 기울자 이를 피해 이 고장에 들어와 그 후손들이 이어 살아간다.”

족보 보기가 어려운 것은 장인 조을정이 세종 19년(1437) 무과에 합격해 어모장군이라 했고, 세종 29년(1447)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를 했다’고 적혀있다.

앞뒤가 좀 맞지 않는 이야기 같으나, 하여간 고인충 묘갈명을 보니 두 번째 부인이 평양조씨로 조을정 딸이 확실하다. (전라북도금석문대계 213면)

↑↑ ▲ 제주고씨 가훈
ⓒ 완주전주신문


▲ 조을정 가계

1. 조 병사 장손 집
조을정 8세에 이르러 네 갈래로 나뉘어 큰 집을 ‘고산공계손(高山公系孫)’이라한다. 그런데 고산계 자손이 현재 논산, 전주, 부산, 익산, 서울, 김제에 사나, 정작 고산에는 직손이 적거나 아주 없어서 그런지, 외가·외손 관념이 희미해진 편으로 보인다.

큰집 계통은 ‘인→이동→동여→혁→창성→진항→희한→태현→재영→승호→한규→현상’으로 이어 내려오나, 실은 아들이 없어 무하고, 혹은 양자를 가 겨우겨우 이어오는 가운데 병란(兵亂)등으로 고산에 머문 자손이 귀한 것으로 보인다.


2. 조 병사의 조상
시조는 조춘(趙椿)으로, 고려 금자광록대부 추밀원부사를 지냈다. 남송(南宋)인으로 고려에 들어와 금(金)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5대조 조인규(趙仁規:1237~1308)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장군이다.

공적이 워낙 많아 원래 선적(先籍) ‘상원(祥原)’을 충렬왕께서 ‘평양(平壤)’으로 고치게 하여 오늘날 평양조씨이고, 부인은 한산(漢山) 조씨(趙氏)이다. 조준(趙浚:1346~1405)은 조선개국 1등 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조인규의 증손이며, 을정 할아버님(방우)과는 6촌간이다. 조견은 위 조준의 아우이나 형과 달리 정몽주의 생각과 뜻이 같았다. 묘는 경기도 성남시 여수동 산 30번지에 있다.

조을정의 족보 기사가 워낙 짧다. 1437년(세종19) 무과에 합격 어모장군이라 했으며, 1447(세종29) 전라병마절도사를 했다. 묘는 실전이고, 고산면 서봉리 소농골에 단을 세워 제사한다. 부인 기사는 없다.

대동보 첫 권(1994년 판) 494면 하단(梱帥:곤수)에 6도 병사 기록이 나온다.


▲ 처가 덕 외가 은혜
조을정 묘를 잃어 고산면 서봉리 소농골에 단을 설치했고, 그 외아들 보(普)의 묘는 소농골 관음동(觀音洞)에 부인 고흥류씨와 자좌(子坐) 쌍분(雙墳)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조을정 병사 살림이 넉넉하였고, 너그러웠음을 알 수 있다.

고산면 서봉리의 임야 지적도나 항공사진을 보면 조, 구, 박, 김, 고 등 다섯 집안 종산 대부분이 이어져있다.

이는 조을졍 병사가 딸들에게 일정량의 토지를 고르게 나눠줬다고 보이며, 딸들 자손마다 유산을 잘 지켜 오늘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 ▲ 고씨 묘(고인충) / 네이버 참조
ⓒ 완주전주신문


■ 이야기를 마치며

조을정 병사 자손들을 고산에서 만나기 어려워 심히 안타까우나, 외손 능성구·밀양박·고령김·제주고씨가 번성하여 불행 중 다행이다.

평양조씨처럼 줄어들지 않기를 바란다. 외손들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두루두루 함께 어울려 잘 지낸다면 이게 바로 ‘대동단결(大同團結)’ 아름다운 완주정신이다.

사람 줄어 멀어지고 , 몰라 버성기며, 바빠 못 찾아보면 삭막한 삶이다.

예전 어른들은 딸, 사위 끌어안고 살았다. 이 모범을 보인 분이 바로 조을정 병사이다. 서봉리 ‘탄금(彈琴)바위’는 이래서 유명하다.

↑↑ ▲ 고산면 원서봉리 탄금바위에서 본 고산천과 안수산
ⓒ 완주전주신문

조을정 병사는 고산 지역에 큰 흔적을 남기신 어른이다. 외손 능성구·밀양박·고령김·제주고씨 집안에서 꼭 기억하며 서로 친하게 지낼수록 남들이 존경할 것이다.

무엇보다 ‘5종중연합회(가칭)’를 만드는 경우, 완주를 이끌어나갈 큰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평생지안(平生志安:평생 바르고 좋은 마음으로 살자)’ 제주고씨 가훈을 통해 얻은 바 크고, 능성구씨 보갑(譜匣)에서 큰 감명을 받았으며,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박세정·김수인 기록을 보고는 놀랐다. 집집마다 영세무궁하기 바란다.


◆참고한책: 평양조씨대동보, 밀양박씨 족보, 고산지, 조선왕조실록, 전라북도금석문화대계, 평양조씨종보, 완주전주신문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쓴이=조 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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