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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곳곳에 순국 호국영령들의 넋 살아 숨 쉬어”
(완주군 호국 전적지)
2019년 06월 14일(금) 10:49 [완주전주신문]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한 법정 공휴일인 현충일과 6.25 한국전쟁, 6.29 제2연평해전 등이 6월에 모두 일어났다.

이러한 사건에서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거나 희생돼 그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다.

완주군에는 왜세와 맞서 싸웠던 역사의 현장, 그리고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바친 순국 호국 영령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이 곳곳에 있다.


■ 웅치전적지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18-1번지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3,650,609㎡로, 지난 1976년 4월 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됐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를 침략했던 왜군에 맞서 싸웠던 격전지이다.

왜군은 해로를 통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장악코자 했으나, 이순신의 활약으로 막히자, 육로로 침입할 계획을 세웠다.

왜군은 무주, 금산, 진안 등지에 군대를 집결했고, 1592년 7월, 웅치로 쳐들어왔다.

ⓒ 완주전주신문

이에 앞서 김제 군수 정담(鄭湛), 나주판관 이복남(李福男), 동복 현감 황진(黃進) 등이 왜군의 공격을 대비, 웅치를 지키고 있었는데, 정담은 황진과 더불어 미리 웅치의 지리적 형세와 왜군의 형세를 살폈다.

방어태세는 갖추고 있었으나, 왜군이 만약 웅치와 이치 양쪽에서 공격한다면 전라도 방어에 부담이 큰 상황. 이때 북상 중이던 고경명(高敬命) 부대가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해 금산의 왜군과 대치했다.

때문에 진안 부근의 왜군 부대만 전주를 공격해 웅치 부근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에서 의병장 황박(黃樸)이 최전방을 지키고, 이복남이 그 뒤를, 정담은 정상에서 최후 방어선을 구축했다.

웅치의 험한 지형을 이용해 왜군의 공격을 막았지만, 결국 수적 열세에 밀려 방어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왜군에 패하고 말았지만, 접전을 벌인 결과 왜군에게 큰 타격을 입혀 안덕원에서 남은 왜군을 격파했다.

결국 왜군의 전주 함락은 실패했고, 전라도 점령 역시 달성하지 못했는데, 이는 임진왜란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 이치전적지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 12-1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3,318,357㎡로, 웅치전적지와 함께 지난 1976년 4월 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됐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를 침략했던 왜군에 맞서 싸웠던 격전지이다.

이치는 대둔산 기슭인 운주와 진산 사이의 고개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이곳에 침입했다.

금산 방면의 왜군은 원래 진안 방면에 주둔한 왜군과 전주를 공격하려 했는데, 때마침 북상한 고경명 부대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금산의 왜군은 고경명 부대를 전몰시키고, 전주를 공격코자 했다.

웅치전투를 치르고 안덕원 전투에서 패배한 왜군이 금산으로 합류하면서 이들 병력과 함께 전주 공격을 위해 우선 이치로 향했다.

ⓒ 완주전주신문

광주 목사 권율과 동복 현감 황진은 전라도 관군 1,500명을 지휘, 이치의 험난한 지세를 이용해 왜군을 공격했고, 마침내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퇴시킴으로써 임진왜란의 첫 승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조선군보다 우세한 왜군을 대항해 승리로 이끌었던 원동력은 장수들의 성실한 지휘와 향토병들의 불굴의 투지, 지세를 이용한 전투 때문.

이치전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군의 기세를 꺾어 전라도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유재란(1597) 때까지 7년 동안 군량보급과 병력보충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조선군 사기 진작에 큰 역할을 했다.


■ 완주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 15-24번지에 위치한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는 지난 2015년 12월 28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31호로 지정됐다.

1894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충청·경상·강원·경기·황해 지역으로 확산됐고, 그해 11월 초 공주 우금치에서 농민군은 일본군의 무력에 밀려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최공우가 이끄는 농민군 부대가 대둔산에 주둔했다.

지형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몇 명에 그치던 농민군은 점차 증가해 50여명까지 늘어났다.

농민군은 1894년 11월 중순 경부터 1895년 1월 24일까지 대략 70일정도 대둔산에 웅거했다.

민보군의 공격이 효과가 없자, 대둔산의 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1월 23일 일본군 3개 분대와 장위영병 30명 등 총 60명으로 이뤄진 군대가 고산현 양장면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 5시 2개 분대로 나눠 농민군의 배후로 향하게 하고, 1개 분대와 장위영병 30명을 인솔해 농민군을 양쪽에서 공격했다.

농민군 항쟁 유적지는 거대한 바위가 남동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북동쪽과 남서쪽은 깎아지른 암벽이었기에 접근이 불가능했고, 북쪽과 서북쪽에서만 접근이 가능했다.

유적지로 올라가는 출입구에는 동학농민군이 쌓은 축대 흔적이 남아있다.

농민군 요새 전면에는 큰 돌을 쌓아 여기저기 총구멍을 내어 놓았다. 요새가 견고해 일본군의 사격도 큰 효과가 없었다.

배후에서 접근한 일본군으로 인해 결국 농민군의 요새는 함락됐고, 이 과정에서 일본군과 관군에게 모든 농민군이 사살됐으며, 농민군이 살았던 집도 불태워졌다.

대둔산 전적지는 다른 지역의 농민군 관련 유적지가 대부분 유실된 것에 비해 거의 온전히 남아 있어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로서 중요도가 크다.


■ 완주 삼례동학기념광장

완주군 삼례읍 신금리 417-3번지에 소재, 1892년 11월 동학교도들의 삼례집회와 1894년 9월 동학농민혁명의 제2차 봉기가 시작된 삼례봉기를 기념해 지난 1996년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삼례 입구에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를 세웠다.

이후 2003년에는 역시 같은 단체에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을 조성했다.

1860년 창도된 동학의 교세는 1880년대 중반부터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으로 확산됐지만 동학교도에 대한 관의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다.

이에 교조의 신원과 포교의 자유를 바라는 교도들의 열망도 고조됐다.

ⓒ 완주전주신문

1892년 동학교단의 핵심인물인 서장옥과 서병학이 주도, 공주에서 교조의 신원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이것이 바로 공주집회다. 교조신원운동은 곧 전라도로 이어졌다.

1892년 11월 수 천명의 동학교도들이 삼례에서 집회를 개최했는데, 이것이 바로 교조신원운동 삼례집회다.

동학교도들은 전라감사 이경직에게 교조 최제우의 신원과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의 금지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전라감사는 탄압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각 군현에 내리면서 삼례집회는 종료됐다.

삼례집회를 계기로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의 변혁지향세력들이 세력결집할 수 있었고, 이후 전개되는 동학농민혁명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하게 됐다.


■ 완주 독립운동 추모공원

완주군 경천면 용복리 278번지에 위치해 있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총 15억 여원의 국비와 도비, 군비, 민간자본금이 투입된 독립운동 추모공원은 완주 출신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28인의 애국애족정신과 위업을 기리고, 군민의 민족정기 선양을 위한 산 교육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조성된 소공원이다.

ⓒ 완주전주신문

이곳에는 애국지사 백산 장병구 선생 영전에 올리는 ‘추모시’가 적힌 거대한 비석이 있다.

장병구 선생은 군자금 조달을 위해 활약한 독립운동가로, 전주에서 활동하면서 인쇄기계와 석판등을 설치, 조선은행 발행 지폐를 인쇄해 옥고를 치른 인물로 기록됐다.

또한 공원 내에는 독립운동 기념탑과 6.25참전 기념탑, 베트남 참전 기념탑 등이 건립돼 있어, ‘독립운동’뿐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호국영령들을 만날 수 있다.
원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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